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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 홍수웅 박사님(의대 59입학)의 기부스토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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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1-06-16 10:27 조회2,05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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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웅 박사님(의대 59입학)의 기부스토리 인터뷰

 

 

궁핍한 학생들을 도왔으면 하는 생각은 오래 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경험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죠.

 

저는 의예과 이후의 나머지 의대 4년은 등록금을 한번도 제 때에 내지 못했습니다. 등록금 납입 마지막 날까지 애를 태우며 마음고생을 했죠. 저의 아버님은 제가 본과 1학년 때 혈압과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우시고 어머님은 심장병과 신부전증으로 고생을 하시면서 집안 사정은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가정교사 일로 들어오는 쥐꼬리만한 봉급이 저희 가정의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 다 50대 초반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 갈 결심을 했습니다.

많은 노력 끝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니아 대학 (University of Pennsylvania) 의 이비인후과 및 머리 목 수술 (ENT, Head and Neck Surgery) 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이비인후과 및 머리 목 수술 디파트먼트는 미국에서도 최고 학부 중의 하나였는데 저는 이곳에서 레지던트를 잘 마쳤습니다. 당시 펜실베니아 대학에는 6백명이 넘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있었는데 외국인도 거의 없었고, 한국인은 3명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요즘의 젊은이들은 생각지도 못할 평균 주 70-80시간 일을 했습니다. 그때의 일이 습관이 되어 그 후 개업 35년 동안 주 평균 70-80시간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제 모습을 보고 아들은 아빠가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않는다며 자기는 커서 절대로 의사는 되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을 때 한국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펜실베니아 대학에 남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저를 잘 돌보아 주시던 교수께서 “나가서 개업을 해보고 결정을 하라”고 자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도시에 있는 한 의사 분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곳에 가서 일을 하다가 결국 그곳에 평생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또 의사 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학생들을 지원 해야겠다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려 했고 서울대 약대 동문인 제 아내도 적극 찬성했습니다. 저의 아이들도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저의 장학금에 대한 생각은 꼭 공부를 잘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적이 뛰어나지 않아도 가정 형편이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 그리고 앞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열심히 봉사하며 일할 수 있는 의사 지망생에게 지급이 되면 좋겠습니다.

 

후학들에게, 의사의 길을 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이라면 ‘열심과 성실’입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의 젊은 세대와 그들의 가치관에 대해 완전히 이해를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학교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든, 큰 병원에 가서 일을 하든, 혹은 개업을 하든 어디에서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환자를 위하여 일하며, 그 일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남가주에 거주하는 홍수웅 박사는 서울대 의대에 장학금으로 10만달러를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