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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 홍수웅 박사님(의대 59입학)의 기부스토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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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1-06-16 10:27 조회4,7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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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웅 박사님(의대 59입학)의 기부스토리 인터뷰

 

 

궁핍한 학생들을 도왔으면 하는 생각은 오래 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경험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죠.

 

저는 의예과 이후의 나머지 의대 4년은 등록금을 한번도 제 때에 내지 못했습니다. 등록금 납입 마지막 날까지 애를 태우며 마음고생을 했죠. 저의 아버님은 제가 본과 1학년 때 혈압과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우시고 어머님은 심장병과 신부전증으로 고생을 하시면서 집안 사정은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가정교사 일로 들어오는 쥐꼬리만한 봉급이 저희 가정의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 다 50대 초반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 갈 결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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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노력 끝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니아 대학 (University of Pennsylvania) 의 이비인후과 및 머리 목 수술 (ENT, Head and Neck Surgery) 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이비인후과 및 머리 목 수술 디파트먼트는 미국에서도 최고 학부 중의 하나였는데 저는 이곳에서 레지던트를 잘 마쳤습니다. 당시 펜실베니아 대학에는 6백명이 넘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있었는데 외국인도 거의 없었고, 한국인은 3명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요즘의 젊은이들은 생각지도 못할 평균 주 70-80시간 일을 했습니다. 그때의 일이 습관이 되어 그 후 개업 35년 동안 주 평균 70-80시간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제 모습을 보고 아들은 아빠가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않는다며 자기는 커서 절대로 의사는 되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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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을 때 한국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펜실베니아 대학에 남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저를 잘 돌보아 주시던 교수께서 “나가서 개업을 해보고 결정을 하라”고 자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도시에 있는 한 의사 분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곳에 가서 일을 하다가 결국 그곳에 평생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또 의사 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학생들을 지원 해야겠다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려 했고 서울대 약대 동문인 제 아내도 적극 찬성했습니다. 저의 아이들도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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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장학금에 대한 생각은 꼭 공부를 잘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적이 뛰어나지 않아도 가정 형편이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 그리고 앞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열심히 봉사하며 일할 수 있는 의사 지망생에게 지급이 되면 좋겠습니다.

 

후학들에게, 의사의 길을 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이라면 ‘열심과 성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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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의 젊은 세대와 그들의 가치관에 대해 완전히 이해를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학교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든, 큰 병원에 가서 일을 하든, 혹은 개업을 하든 어디에서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환자를 위하여 일하며, 그 일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남가주에 거주하는 홍수웅 박사는 서울대 의대에 장학금으로 10만달러를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