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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 신의, 유태용 한국방재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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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16-01-10 14:16 조회49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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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곳을 잊지 않는다. 어려웠던 순간을 항상 되새긴다. 

덕분에 유태용 동문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 지금, 자신만의 나눔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격동의 세월을 이겨낸 삶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1950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유태용 동문의 학창시절은 역사적 격동기와 맞물려 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요즘 세대에게 유 동문의 경험은 책에서나 접하는 옛날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유 동문은 과거를 잊지 않으려 그 시절을 끊임없이 복기한다. 

당시 경험을 <어느 서울대 공대생의 한국전쟁>이라는 책에 풀어내기도 했다.

“요즘은 상상도 못할 이야기죠. 이후로도 어렵사리 국가 발전을 이뤘고요. 우리 세대가 고생했다고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큰 어려움을 헤쳐 온 인생 선배들을 보면서 힘든 순간이 닥쳐도 좀 더 지혜롭게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유태용 동문은 대학 졸업 후 1957년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으며 국토 계획과 건설 행정을 담당했다. 

유 동문의 전공은 토목공학. 그중에서도 방조제가 전문 분야였다. 

공직 생활 초창기에 국제원조기구 장학생으로 선발돼 1962년 미국에서 아카데미 코스를 밟기도 했다. 

그렇게 미국에서 수학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만 해도 단일목적댐뿐이던 우리나라에 다목적댐을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저는 어찌 보면 운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농촌에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고, 좋은 기회가 닿아 외국에서 공부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오랜 시간 이어온 남다른 향토애

공직에 있으며 국가 발전에 힘써온 유 동문. 

그는 오래전 고향을 떠나왔지만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는다. 

불과 몇 원하는 수업료가 없어 일곱 살 나이에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오갔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적어도 돈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유 동문은 자신만의 기부 신념을 세울 수 있었다. 

“똑같이 모를 심어도 좋은 쌀을 얻으려면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모를 심고 가만히 두면 한 섬밖에 못 얻지만, 비료를 주고 잡초를 솎아내면서 키우면 네 가마니까지 불어나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재도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야 자랄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건 시작일 뿐이죠.” 

유 동문은 서울대학교에 부동산을 기부해 정읍과 고창 출신 후배들을 위한 ‘정고장학기금’을 마련했다. 

단지 태어난 곳에 대한 고집만은 아니다. 

그 자신이 농촌에서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던 까닭에, 그곳에서 나고 자란 후배들이 학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는 선배의 따스한 마음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농촌에서 몇 백만 원씩 하는 등록금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방에서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온다는 건 쉽지 않아요.”  

유태용 동문은 장학생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지금은 학생들이 그가 기부한 장학 기금의 혜택을 입지만, 언젠가는 좋은 인재로 성장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주역이 되리라 믿는 까닭이다. 

“서울대학교가 이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이 되었다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해결하지 못한 연구 과제가 많아요. 

서울대학교의 많은 인재가 그런 분야에도 거침없이 도전해 좋은 성과를 내주길 바랍니다.”

 

유태용 한국방재협회 명예회장

내무부와 건설부에서 오랜 기간 국토 계획과 건설 행정을 맡았다. 

1998년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한국방재협회 준비위원장에 추대됐고, 창립을 준비해 1999년 초대 회장에 취임한 바 있다.   

with SNU 토목공학과 학사. ACAD 12기 수료. 

정고장학기금을 마련해 정읍, 고창 출신 학생들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및 대학원생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